뭉게뭉게 떠다니는 생각 잡기

2024-03-31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내가 잘 하는 것

눈 부시도록 빛나는 2024. 3. 31. 14:31

 
# 나에게도 쉬운게 있다.
 
김겨울 작가의 '겨울의 언어'를 읽다가-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세삼 느껴졌다.
시로 하여금 위로 받고, 슬픔을 치유 받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그녀
 
그리고 요새 보고 있는 '굿닥터'라는 TV 시리즈의 주인공.
자펙 스펙트럼이 있어 다른 사람과 소통이 어렵지만, 책에 있는 모든 내용을 외워 외과 의사로서는 실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
오히려 환자의 감정을 고려할 수 없기에 더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환자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그의 장점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은 책에서 본 내용이나 CT로 찍은 영상들을 머릿속에 취합하여 해결책을 찾는 장면을 묘사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 장점이 있다.
남들보다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더 많이 자극을 받고 더 많이 공감하는-
 
나의 장점을 굳이 찾아보자면, 남들보다 쉽게 되는 것이 있다면?
상상력
: 경험하지 않은 것, 현재에 없는 대상을 직관하고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능력
 
사실 나에겐 남들보다 쉽게 되는 것은 없다라고 생각했다.
어제 한 유뷰트 쇼츠를 보기 전까진.
A는 집에서 혼잣말을 하고, 상상을 종종 한다했고, 그걸 본 B는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B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MBTI에서 S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겐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상상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자기 전 눈을 감고 바다나 우주를 탐험하는 상상을 하다 잠들기도 하는 나는,
나에겐 쉬운 것이 누군가에게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한편으론 안도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늘 어느 분야에서 선천적으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내가 머리를 쥐어짜고 계속 공부해야하는 것과 달리, 별 노력 없이 설명만으로 물리학을 쉽게 이해하는 사람,
절대음감을 갖춰 한번 듣고 피아노를 멋있게 치는 사람,
머릿속에 있는 것을 코딩으로 뚝딱뚝딱 현실로 만들어내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많이 부러워했다.
남들보다 노력을 덜 해도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사람들.
나와는 달리, 일할 때도 분석적으로 먼저 사고하게 되는 사람들이 부러웠고 닮고싶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에게는 상상이 어려울 수 있다니-
 
내가 가진 결핍만 집중해서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처음으로 내가 누리고 있는 상상 혹은 그 외의 것들이 누군가에겐 가지기 어려울 수 있다라는 생각을 어제 처음 하게 되었다.
설령 그들이 부러워하진 않을지어도.
 
그런 점에서 나의 부족한 점을 남들과 비교하기 보다는
내가 가진 강점으로 또다른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올 해 이루기로 한 작은 목표들에게 상상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에게 쉬운 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필요해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내가 잘 할 수 있어서,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될 것 같다.
 


# 나와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의 신기함이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런 다양한 사람들 중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무리, 그룹을 만든다.
사회적으로 필요해서일 수도 있고 친교를 위한 자발적인 모임일 수도 있다.
사회 생활을 하기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나와 비슷한 성향과 사고를 하는 이들을 주로 만나왔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나와는 다른 생각을 하는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리고 이 회사에서는 나와는 너무 다른 분야에 흥미를 갖고 놀라운 능력을 갖고 있는 이들을 많이 만났다.
이들과 소통하는 것이 처음엔 쉽진않았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그들의 사고 방식과 관심 분야에 조금씩 익숙해지며 그들의 무리에 섞여가고 있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점은 배우고, 내가 가진 장점은 지켜가는 것 -
그것이 사회 생활의 한 페이지가 아닌가 싶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면서 나는 그렇게 성장하나보다.
 
그리고 나와는 인연이 닿지 않거나 분야가 겹치지 않아서 만나기 어려운 이들은,
바로 이 책이라는 매개체로 만나볼 수 있다.
 
책을 읽다가 문득, 내가 이 사람이랑 커피 한잔 하며 수다를 떨고 있는 느낌을 받았는데
실제로 나와는 다른, 혹은 유명한 이들을 만나 차 한잔 마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지 짐작하면서
이런 이들을 책으로 만날 수 있어 참으로 좋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내가 유튜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라디오 DJ를 하면서 방송의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고, 라디오 DJ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싱어송라이터 생활을 하다가 알게 된 뮤지션의 소개를 통해서였고, 싱어송라이터 생활을 하게 된 것은 스무 살이 된 후 허송세월로 기타나 튕긴 탓이고, 그렇게 기타나 튕기다가 작곡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시절 피아노를 배운 덕이며, 그렇게 아무런 의미 없이 흘러간 콩쿨 준비의 시간은 오랜 숙성을 통해 지금의 김겨울이라는 인간을 만들어냈다. 하루에 네 시간씩 연주를 준비하는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무대의 설렘도, 음악의 즐거움도, 마치 DNA에 새겨진 듯 가지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무의미한 준비의 마법이다. 

:

그 무의미했던 준비의 시간은 아주 사소한 순간까지도 지금의 내가 되어 있다.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도, 하나의 글감이 되어. - <겨울의 언어>, 김겨울



허송세월이란 없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것들이 불필요해져 공허함으로 남을 때를 허송세월이라 한다.
전 직장에 다니면서 혼자 공부했던 시간들, 
서류 조차 합격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순간에서 일찍 시작한 면접 준비,
종이에 끄적거리면서 내 커리어를 끊임없이 고민하던 시간,

거진 10년 가까지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끄억끄억 시간을 내서 발레 수업을 들었던 시간들,
남들보다 오래 배웠음에도 더디게 느는게 속상하기도 했던 시간들,
그 한 시간 수업 듣는다고 뭐가 달라졌겠냐 라는 생각에 허무한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으로 고쳐먹었다.
시작했을 때 제대로 배웠으면 좋았을텐 데가 아니라,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처음 시작하는 이들 보다 더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것이다.
 
점(point)들이 모여 선(line)이 만들어진다.

다양한 점들을 찍어두고, 그 점들의 밀도를 더 빼곡해 채워둔 덕에 나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
 
주변에서 보기엔 '쓸데 없는 일'로 치부되었던 일,
혹은 '무모하다'라고 불리던 도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내가 가야할 길을 고민하며 끄적이던 한 페이지의 종이에 적인 다양한 노선 중,
나는 한 직선을 따라 걸어갔고
결국엔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과 갖고 싶었던 것들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런 점(point)들을 절대 허송세월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