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게뭉게 떠다니는 생각 잡기

2024-01-14 친구네 가족을 초대하다

눈 부시도록 빛나는 2024. 1. 14. 23:03

”우리는 왜 그 친구네는 안 놀러가?“ 라는 남편의 질문에 친구한테 급작스레 전화해 우리를 초대해달라고 한 날이 있었다.
나의 친한 친구들 집은 한 번씩 다 가본 것 같은데 내 대학 친구네 집은 못 가봤다며.

갑작스럽기도, 황당하기도 한 전화에도 친구와 친구 남편은 흔쾌히 우리를 초대해 주었다.
강제로 우리를 초대하게 했던 남편 덕에 이 두 가족은 함께 하루를 보내며 무척이나 가까워졌다.
우리는 공통의 관심사와 다른 듯 같은 성향을 발견하고 앞으로 더 자주 만나자며 풍요로운 하루를 아쉽게 마무리 지었었다.

친구 남편의 정성스런 코스요리와 극진히 대접 받은 그날이 너무 고마워서
우리는 한 달도 채 가기 전에 그 친구네를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오랜만에 집 청소를 하고 남편과 나는 각자 요리를 준비한다.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는 마음이 컸다.
다행히 임신 중인 내 친구는 입덧 없이 잘 먹어주었다.
우리는 도란도란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들이 커 가는 모습을 회상하며
친구의 둘째 아이에 대한 이야기와 사춘기를 코 앞에 둔 우리 아이의 성교육에 대해 고민한다.
큰 집으로 옮겨가야할 지 고민이 많던 친구는 우리 집에 있는 아이템들 보고 관심을 보이며 벌써 이사를 하리라고 마음을 먹은듯 싶다.
사야할 지 고민이었던 수유 의자는 오래 앉아있기에는 허리가 아파서 쇼핑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했고,
계획에 없던 빔 프로젝트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저 아이템이라면 육아 퇴근 후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쇼핑리스트에 슬쩍 끼어넣었다.

서로의 집에 방문한다는 것은
서로를 자신의 영역으로 껄끄럼 없이 맞아들이는 행위이다.
내 본연의 모습을 보여도 좋다는 친근함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집에 방문할 때면 두리번두리번 집주인의 취향을 엿보게 된다.
이 집에 사는 사람은 어디에 관심이 많은지,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떤 그림을 좋아하는지, 어떤 스타일의 가구를 좋아하는지, 평소에 어떤 요리를 해먹는지,
그렇게 서로에 대해 더 잘 알아간다.

대학생 때 친해진 우리는 벌써 17년지기 친구가 되어있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못 해도 일 년에 한번은 만났으며, 힘들 때 기쁠 때 함께 울고 웃어줄 수 있는 사이다.
나는 그녀를 잘 알고있다고 생각했다.
두 차례의 가족 모임에서 남편과 그녀의 아들과 함께 있는 그녀를 보며, 내가 그녀를 잘 알고있는게 맞았나 싶을 정도로 친구의 또 다른 면모들을 하나씩 알아간다.
친구에게 실망감을 느꼈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내 친구는 저런 면도 있구나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다.
남편에게 듬뿍 사랑 받고 있는, 아이 앞에서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니 내 마음이 따뜻하다.
내 앞에서 크게 화내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친구였지만 화가 나면 소리지르며 운다는 그녀가 낯설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져 가는 모습을 보니 그 방법이 그녀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 크게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싶기도하다.
그런 친구의 모습까지 받아주고 사랑해줄 수 있는 남편이 꽤나 듬직해보였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 내 마음이 전해졌을런지는 모르겠지만 더 자주 보고 싶은 그녀와 그녀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