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고 싶어 떠난 여행 - 발리

2024-02-28 발리에서의 마지막 저녁 in 사누르

눈 부시도록 빛나는 2024. 3. 1. 16:37

 
 
오늘은 발리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밤 00:20에 떠나는 비행기인데 하필 체크아웃을 하는 마지막 날에 민찬이가 열이 나고 몸이 늘어졌다.
late checkout을 할 때는 보통 추가 요금을 내거나 1박 요금을 더 내야한다는 걸 알고있었지만, 혹시나 해서 무료로 더 머물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호텔 측에서는 다음 손님의 체크인 시간을 확인하고서 무료로 한 시간 더 머물 수 있게 해주었다. 호텔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융통성 있게 허용해주는 경우도 있으니 앞으로도 찔러봐야겠다.
 
체크아웃 후 짐을 맡기고 리조트 내의 한 정자에서 쉬었다. 다행히 바닷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곳이라 아이의 열이 식었다. 아이가 게임을 하는 동안 나는 미처 먹지 못한 맥주를 해치웠다. 발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의 낮에 맥주라, 역시 좋군! 정자에서 둘이 바닷바람 맞으며 둥굴거리다가 자전거를 빌려 거북이 센터로 갔다.


거북이 보호를 위해 다친 거북이를 보고하고, 산란기에 해변가에서 데려온 알들을 무사히 부화시켜 바다로 되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 곳이다. 체험비를 내면 아기 거북이에게 이유식을 줄 수 있고, 시력을 잃은 거북이에게 상추를 먹일 수 있도록 해준다. 이 거북이센터는 하얏트와 안다르가 함께 운영하는 듯 했다.


이렇게 어린 거북이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이 새롭고 신기로웠다. 이유식은 생선을 갈아만들었는지 비릿한 냄새가 났다. 수저로 이유식을 퍼서 물 가까이 대 주면 냄새를 맡고 거북이들이 몰려와 한 입씩 먹고간다. 어린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이듯, 수저에 조금씩 담아 못 먹는 놈이 없도록 골고루 거북이들을 먹였다. 아이보다 내가 더 신났다. 

 
어떤 거북이들은 등 뒤에 발을 올려놓고 수영을 했는데, 그건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 했다. 거북이 거북이 .. 이름도 귀여운데 생긴 것도, 하는 짓도 너무 귀엽다. 이번 여행의 테마 동물 3대장 중 하나로 골랐다. 아이와 내가 고른 이번 여행의 테마 동물은 거북이, 원숭이, 도마뱀이다.

큰 거북이가 물 밖으로 올라와 나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벌리듯 인사했다...는 내 희망사항과 상상이었다.
알고 보니 시력을 잃어 먹이를 주나 싶어 물 밖으로 나와 먹이를 달라고 입을 벌리는 것이라 했다. 


어떤 거북이들은 등 뒤에 발을 올려놓고 수영을 했는데, 그건 휴식을 취하는 것이라 했다. 거북이 거북이 .. 이름도 귀여운데 생긴 것도, 하는 짓도 너무 귀엽다. 이번 여행의 테마 동물 3대장 중 하나로 골랐다. 아이와 내가 고른 이번 여행의 테마 동물은 거북이, 원숭이, 도마뱀이다.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조금 더 달렸다. 아이와 해변가에서 자전거를 꼭 타고싶었는데, 다행히 마지막 날에 잠시나마 즐기고 가니 좋다.

 
아이가 힘들어해서 괜찮아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 파스타와 딸기 스무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아 오랜만에 맛있는 커피를 마신다. 발리는 물가는 싸지만 내가 좋아하는 맥주, 칵테일이나 커피가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맘껏 마시진 못했다. 입맛이 없는 아이는 쥬스로 끼니를 대신했고, 식전빵과 파스타는 나 혼자 거진 다 먹었다. 잔잔한 바다와 함께 하는 점심.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니, 오늘 하루 일정의 하나하나에 '마지막'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마사지를 받으러갔다. 가장 기본적인 발레니즈 마사지 한 시간 기준으로 싼 곳은 100루피아도 있지만 비싼 곳은 500~600 루피아를 받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굳이 고급스런 마사지샵을 찾지 않았고, 110~150 루피아 선에서 마사지샵을 골랐다. 오늘 나를 담당해주신 마사지사는 나이가 좀 있어 보여 힘이 없으시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나중에는 아파서 몇 분만 더 참으면 되하고 이를 악물기도 했다. 그래도 오일칠만 하는 것보다는 이런 딥티슈 마사지가 좋다. 아이는 발마사지를 받았는데, 잠이 솔솔 왔지만 너무 시원해서 자버리면 너무 아깝다며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고 했다.
 
한국돈으로 한 시간에 만원정도의 돈으로 이런 좋은 마사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게 여행객으로서는 참 좋지만, 이런 서비스를 받을 때마다 이들은 이 돈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까?란 걱정을 하게 된다. 이곳 사람들이 노동으로 받는 돈의 가치, 이 곳의 상점, 시설들을 생각하다보면 우리나라 90년대가 떠오른다. 그 시절, 우리 엄마도 이런 고된 노동과 이와 비슷한 환경 속에서 나를 키웠겠구나 싶었다. 마사지를 받으며 괜한 향수에 젖어든다. 또 다른 마사지사의 딸은 밖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고, 마사지사는 아이가 하루 종일 핸드폰만 한다고 불평을 했다. 일하느라 놀아줄 수 없는 엄마의 마음도 오죽 속이 상할까 싶다.
 

공항으로 가기 전 우리가 묵었던 리조트 식당에서 마지막 저녁 하늘을 구경하며 음료와 스파게티를 먹었다. 저녁시간이라 사람이 몰렸는지, 예상보다 스파게티가 늦게 나왔고, 늦은 스파게티의 맛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사실 한가로운 사누르의 저녁 하늘을 위함이었지, 음식은 기대하지 않았다. 지나가던 종업원이 음식은 어떤지 물어봤다. 왠만해선 맛있게 먹는 우리는 사실대로 별로였다고 말했다. 어떻게 별로였는지 말했더니 쉐프에게 전해준다 했고, 음식을 바꿔준다 했. 우리는 비행기 때문에 그냥 가겠다고 했고 계산서를 달라했다. 쉐프가 미안하다며 음료를 무료로 준다했다. 반이나 남긴 스파게티가 아까웠던 참에 음료수라도 무료로 먹을 수 있으니 잘됐다 싶다. 사실 식당에서 시켜 먹는 음식이 늘 맛있을 수도 없는 것이기도 하고,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 보니 모두를 만족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해서 우리는 그닥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이렇게 손님의 만족도를 챙기고 만족하도록 대응을 해주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런 서비스 응대도 비싼 레스토랑의 음식값에 포함이 되어있는게 아닌가 싶다.
 
석양 보기 좋은 레스토랑이나 숙소를 찾아다녔지만, 아쉽게도 발리에서 인상깊도록 강렬한 노을은 보지 못했다. 우리가 마지막 날을 보낼 사누르는 동쪽이라 태양이 지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못하는 위치였다. 그럼에도 나는 사누르의 저녁 하늘이 가장 기억이 남는다. 저 편으로 태양이 넘어가면서 하늘이 하늘색, 분홍색, 보라색, 검정색으로 변해가는 모습과 저녁에는 물이 다 빠져나가고 안그래도 조용한 사누르의 바다가 더 고요하고 잠잠해져 평화로움이 극대화 되기 때문이다. 정말 마지막이다, 발리! 몇 시간 뒤면 발리를 떠난다는 것이, 내일은 한국에서 아파트에 둘러싸인 저녁하늘을 보겠다란 사실이 너무나 아쉬웠다. 한 달,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나에겐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던 여행이었다. 심심하고 싶은 여행이었지만, 전혀 무료하거나 단조롭지 않았다. 
 
한번 갔던 여행지는 잘 찾지 않게 되는 나지만, 발리만큼은 꼭 다시 한번, 아니 여러 번이라도 찾고 싶은 곳이다. 행복했던 시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