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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게뭉게 떠다니는 생각 잡기

2024-05-19 우리 엄마

by 눈 부시도록 빛나는 2024. 5. 19.

 
맨발 걷기에 빠지신 엄마가 운동을 하시다 팔이 부러지셨다.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팔을 짚었는데 그 때 팔목이 부러졌다.
그것도 여행을 앞둔 우리 가족이 걱정할까봐 3일동안 숨기시고는 혼자 병원에 다녀오셨다.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이웃 덕에 알게 된 사실.
엄마는 그렇게 본인이 딸의 즐거움에 방해가 되길 원하지 않으셨다.
 
한 쪽 팔로 요리하기 어려운 엄마를 위해 
요리를 잘 못하는 딸은
엄마가 좋아하는 국을 열심히 사다드렸다.
문득, 국도 질리시겠다란 생각이 들어 오늘은 엄마가 좋아하는 생선과 밑반찬을 사갔다.
내가 하루종일 반찬을 요리한다 하더라도 맛이 없다라는 걸
엄마도 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반찬가게에 들리는 것이 서로에게 나은 선택이었단 것은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엄마는 오랜만에 밥을 맛있게 드셨다.
혼자 있으면 생선 발라줄 이가 없으니 아마 먹을 엄두를
아니 먹고싶단 티도 내지 못하셨을 엄마였다.
그걸 너무 뒤늦게 떠올린 나는 오늘에서야 엄마 옆에서 생선 가시를 발라드렸다.
함께 사간 갈치속젓과 밑반찬으로 오랜만에 특식 아닌 특식을 먹은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오랜만에 밥 잘 먹었다'라는 말을 하였다.
"신경쓰지말고 너희나 잘 챙겨먹어."
"집에 있는거 먹으면 돼."
했던 엄마의 말들은 출근하는 딸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엄마네 가면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늘 어김없이 잠이 쏟아진다.
엄마 침대에 누워 잠깐 눈을 부친다는 걸 한시간 내리 낮잠을 잤다.
개운하게 일어난 나에게 엄마는 손톱을 깎아달라했다.
한쪽 팔로는 하기 어려운 것이 참 많다는 것은
두 팔이 성한 이들이 헤아리기 어려울 때가 많다.
손톱과 발톱을 깎아드리면서
그래도 엉덩이 뼈가 아닌 팔이 부러진 게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해야할 일이 있어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이제 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문득 엄마가 목욕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는걸 깨달았다.
"엄마 목욕해야 하지 않아?"
미안한듯 망설이는 엄마.
"너 좀 쉬고 나서 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이거 전혀 힘들지 않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야. '라는 표정과 톤으로
나는 엄마를 재촉했다.
혼자 하기 힘든 엄마는 딸의 한가로움, 방문을 아무말 없이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우리 엄마는 그렇다.
본인은 나에게 아낌없이 다 헌신하시면서
내가 엄마를 위해 고생하는 것, 힘들어하는 것은 원치 않으신다.
 
예전보다 늙은 엄마의 몸을 닦아드리는 것은 딸로서는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누구라도 부모가 늙어가는 모습을 마주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엄마의 몸은
엄마 나이에 비해 훨씬 건강하고 탄탄해서 
그 마음이 그리 서글프지 않았다.
오히려 팔만 부려져서 다행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엄마를 씻겨드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씻겨드리고 
옷 입는 걸 도와드리고
머리를 말려드리고
개운해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니
참 뿌듯했다.
내가 이렇게 옆에서 도와드릴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고,
이렇게 옆에서 도와드릴 엄마가 있어서 참 행복했다.
 
이렇게 아픈 엄마를 돌봐드려야 할 때,
눈꼽만큼이라도 귀찮아하는 마음을 갖고 싶지 않았다.
훗날 엄마가 이 세상에 안계실 때 후회하고싶지 않았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부모가 떠나면 더 잘해드릴껄 하고 후회한다.
자식으로서 갖게 될 그 후회의 마음에 나는 지금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보태고 싶지 않았다.
나를 위한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지 모르겠지만
나는 엄마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 엄마를 아끼고 사랑해주고 싶다.
설령 그 표현 방식이 엄마와 딸의 티격대격되는 형태가 될지라도.
그게 우리 둘의 사랑의 방식이다.
 
내가 할일을 마치고 엄마 집을 나서는데
엄마가 해맑은 표졍과 밝은 목소리로
"목욕시켜줘서 고마워" 하고 외친다.
요새들어 이렇게 고마움과 미안함 표현을 잘하시는 엄마가 참 좋다.
운동 덕에 엄마의 마음에는 이렇게 환한 빛이 들었다.
예전에는 어둡고 좁은 방이었는데.
요새 엄마 입에서 '행복하다'라는 말을 들으니 내가 더 행복하다.
내 삶의 목표였던 엄마가 행복하니
난 더없이 행복해서 견딜 수가 없다.
오늘 엄마와의 시간 동안 엄마가 나의 사랑을 듬뿍 느꼈기를-
나 또한 엄마의 존재만으로
이렇게 위안이 되고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을 엄마도 알기를-
이렇게 행복한 시간이 오래오래 갈 수 있기를 - 
 
훗날 엄마가 더 나이가 들어서 
더 거동이 어려워지게 되면
내가 또 즐거운 마음으로 엄마를 간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시간이 길어져 몸과 마음이 지쳐도
후회없이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엄마를 잘 돌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간병하지 않아도 될만큼 우리 엄마가 건강히, 아주 건강히 오래 오래 내 옆에 계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