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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와의 대화

모순, 양귀자 (2)

by 눈 부시도록 빛나는 2024. 5. 12.

 

 

 

 

하늘이 저켠부터 푸른색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말로 설명할 수 없을만큼 가슴이 아프거든. 가슴만 아픈게 아냐. 왜 그렇게 눈물이 나아지는지 몰라. 안진진. 환한 낮이 가고 어둔 밤이 오는 그 중간 시간에 하늘을 떠도는 쌉싸름한 냄새를 혹시 맡아본 적 있니?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름한 집 냄새는 어디선가 풍겨 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거야...

 
어쩜 이리 글을 잘썼을까.
 
술에 취해 누군가를 때리고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인생에 큰 피해를 끼치는 이들,
이들은 흔히 사회에서 인간 쓰레기 취급을 받는다.
 
나는 한번도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그 괴로움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앞치마를 찬 엄마의 지시가 감옥의 죄수가 자신을 묶고있는 듯했다고, 너무 답답하고 무서워서 벽에 접시를 던졌다는 소설 속 아버지의 마음과 망상들이 얼마나 컸는지 나는 헤아려보지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 안진진은 자신의 아버지이기에, 아버지의 변명과 자기합리화가 저렇게 멋진 표현으로 닫가올 수 있었겠지만
소설 밖의 실상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 고통은 체험하지 않은 이들이 아니라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소설 덕에 술로 고통받고 있는 당사자들의 입장을 떠올려보았다.
내가 그런 감정들로 괴로워했다면, 그걸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한다면 - 당사자는 얼마나 괴로웠을지.
그런 망상 혹은 정신적인 장애는 치료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런 조치나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방법도 여력도 없어서
싼 값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주나 막걸리로 자신만의 방식대로 해소해보려했던 사람들.
그리고 더이상 헤어나오지 못해 인생의 낭떠러지로 떨어져버린 사람들.
그들의 애환을 그 어느 누가 가장 잘 알 수 있을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쌍둥이 엄마와 이모.
이걸 보고 있자니 나의 엄마와 이모가 떠오른다.
소설처럼 쌍둥이는 아니지만, 그리고 소설에서처럼 극단적으로 부와 빈을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모의 행복함에 질투를 느끼고 그렇게 느끼는 자신의 감정의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시비를 걸곤 했던 엄마.
왜 저렇게 말하는걸까? 왜 저렇게까지 생각하지?라는 순간들이 있었다.
소설을 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도움이 필요할 때, 엄마는 이모랑 이모부에게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도움에 대한 고마움보다,

잠시라도 엄마가 세상에 혼자인 듯한 느낌이 들게한 적이 있다면
혹은 사소한 말과 행동이 엄마의 약한 부분을 건드렸다면
그 작은 가시는 엄마의 가슴 속에 오래동안 곪아 그 고마움을 덮어버린다.
그래서 자유롭게 놀러다니는 이모를 향해

괜한 질투심에 그렇게 툴툴거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

.


나 또한 받은 은혜와 감사한 일들 중에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없는지

고마움보다 상처를 더 먼저 떠올리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내가 누리고 있는 감사함보다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내가 받을 빚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내 필요에 의해 그 상황들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면서도
순간순간 느끼는 불편함과 싫은 감정들 때문에 그 고마운 마음까지 등한시 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필요해서 참고 있는 이 이기적인 마음들인데도 불구하고.
 
혼자서는 무서워서 여행을 못하겠다는 어머님에게

누구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는 말했다.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독립적이 되어야 한다고.

 

그래놓고선 오늘 오후엔 어머님처럼 행동한 나를 보았다.

다같이 카페 가서 책을 읽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에게 강조했던 것은 아닌지.

나혼자 있고싶어서 혼자 카페를 가려고 집을 나왔는데 

따뜻한 햇살 아래 가족들끼리 모여 밖에서 함께 보내는 모습을 보니
나도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순간 외로움이 다가왔다.
혼자 있고 싶어 나왔는데도 말이다.

그런 마음이었을까 어머님도?
어머님도 아들을 못 놓아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또한 훗날 우리 아들을 아들이 꾸린 단란한 가족들에 보내기 힘들어하진 않을런지.
아들 가진 엄마로써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끼다가도

나는 저렇게 아들을 부담스럽게하지 말아야지란 생각이 든다.

 

소설을 통해 내 인생의 여러 부분을 대입해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