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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고 싶어 떠난 여행 - 발리

2024-02-27 사누르에서의 평화

by 눈 부시도록 빛나는 2024. 3. 2.

 
 
발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방문한 도시인 사누르에 잠깐 머물렀던 것이 아쉬워 이번 여행의 마지막은 사누르에 머물기로 했다. 
 
아들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혼자 방에서 쉬겠다 하여 나 혼자 자전거를 빌려 사누르 해변가를 달렸다.

 
바다에 비친 하늘과 구름이 장관이었다. 하늘을 머금은 바다를 보고 있자니 황홀했다.

 
보통 해변에는 모래로 자전거를 타기 어렵지만 이 곳 사누르의 해변가에는좁지만 자전거 전용길이 있어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는 이들이 많다. 자전거를 타며 이곳의 사람들, 아니 이곳에 방문한 여행객들과 자연을 구경했다.
 

 
자전거를 타고 해변가의 리조트를 벗어나니 현지인들이 많이 있는 곳에 다달았다. 발리에 사는 현지인들이 데이트하거나 아이들과 수영하러 나온 가족들의 자연스러운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곳마다 풍경이 달라졌다.

 
끝없는 해변가를 내달리는 기차를 타며 창 밖 구경을 하는 느낌이었다. 마음에 드는 곳이 나오면 잠깐 자전거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어 댔다. 이 모습이 나의 20대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버스타고 가다가 저녁 하늘이나 꽃밭이 예쁘면 버스에서 내려 카메라 셔터를 연신 두들겨대던.. 이번 여행은 의도치 않게 내 20대를 돌아보게 되는, 과거의 나를 추억하는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음악, 사진, 일기를 좋아했단 나의 20대 - 그만큼 이 여행동안 내가 마음 속 깊이 좋아하는 것들을 맘껏 누리고 있단 뜻이겠지.


사누르의 바다향이 좋았다. 우리나라의 서해와 동해도 그리고 남해도 바다의 향이 조금씩 다르다. 하물며 발리의 바다도 그렇다. 사누르는 발리의 다른 곳보다 바다향이 진했던 것 같다.


사누르의 저녁 바다는 참 고즈넉하다.
물이 다 빠져나가고 남은 잠잠한 바다위로 하늘위 구름이 비치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울루와뚜가 젊은이가 많은 도시라면, 이곳은 가족과 노부부들이 많이 찾는다.

 
아이와 저녁 먹으러 간 식당에는 우리를 포함하여 두 테이블을 빼고는 모두 백발의 노인들이었다.
어느 백발의 한 노부부가 조용히 앉아 각자 와인과 맥주를 마시며 밤하늘과 밤바다를 쳐다보고있었다. 너무 깜깜해서 무엇을 보고 계시는걸까 싶었다. 한곳을 아무런 말 없이 함께 한 곳을 바라보은 그들의 뒷모습에서 그들이 오랫동안 함께해온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말을 하지않아도 다 아는걸까, 그동안 한 말이 너무 많아서 할 말이 없는걸까. 그들의 평온한 노후가 잠시 부러웠다. 사이좋게 같은 곳을 바라보는 그 뒷모습이, 노후에 이런 여행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이..


그러다 문득 그들은 오히려 젊은 부부나 가족들을 보며 부러워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힘들긴 했어도, 그때가 좋았지라며 지나간 세월을 회상하고 아쉬워함에 목이 메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바다만 보고 있을 도 있겠다 싶었다.




난 아침에 뜨는 해보다 저녁에 지는 해가 더 좋다. 자신의 일을 마치고 유유히 사라지는 쿨함. 뭐든지 할 수 있다라는 포부를 가지고 당차게 떠오르는 아침의 해와은 다르게, 떠나야할 때를 아는 석양은 겸손하고 너그럽다. 
새해 첫 날 해를 보러 가는것이 뭐가 좋은지 아직 모르겠다는 나는, 해의 마지막 날을 보러가는 것이 더 좋다. 상당수를 지키지 못할  새해다짐을 하러 해를 보러가는 것보다는, 일년동안 고생한 나에게 나를 돌아보며 쉬어가자며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싶다. 하늘색 하늘이 분홍색, 보라색,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말도 못할정도로 황홀해지고 행복해지는 나이다. 사누르는 나에게 그렇게 멋진 저녁 하늘을 선물해 주었다.


첫 날 사누르의 저녁 하늘을 맘껏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었는데 오늘은 저녁을 먹으면서 한적하고 고요한 사누르의 하늘과 바다를 맘껏 즐겼다.



이렇게 길게 휴식을 가져본 나는, 이런 여유와 순간 순간의 즐거움이 너무나 값지고 소중하다. 평생 잊지못할 아이와의 추억까지- 발리에서의 한 달은 내 인생의 스펙트럼에서 유난히도 반짝 빛나는 순간일 것이다.